류상욱의 <익스트림 시네 다이어리>


지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것도 십여일 전에.

암에 걸려서 많이 아프다고, 사람들도 못 알아보고 가망이 없다는 소식을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다.

 

그 사람 죽어도 나한테 죽었다는 말 전하지마. 어차피 안 본 지 오래되었으니까, 그냥 연락 끊긴 다른 사람들처럼 어디서 잘 살고 있으려니 할래.”

 

눈 가리고 아웅이지, 이미 아파서 가망이 없다는 걸 알아놓고는, 내 마음 하나 편하자고 이런 소리를 했다.

 

그 사람이 죽었단다.

 

난 그를 (1997년인가?) 세종대 평생교육원에서 만났다. 영화 비평, 영화 제작, 시나리오 창작 등의 과목으로 이루어진 과정이었다.

 

수강생은 한 40? 쯤 되었던 것 같은데, 대부분 20대들로 영화에 대한 꿈과 열정 그리고 무엇보다 똘기충만한 젊은이들이었다.

 

그 중에 한 명 튀는 사람이 있었다. 사법고시 준비생 같은 옷차림, 서류 가방, 더벅머리무언가 아는 건 정말 많은데 말투는 좀 어눌한 사람.

 

그는 나에게 영화 감상 비평 클럽을 만들자고 제안했고, 그래서 몇 명이 모여서 영화도 함께 보고 토론도 하고 그랬다.

 

그 때 우리 과 아이들은 수업이나 작업이 끝나면, 진탕 퍼마시기도 했는데, 돈 있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화양리 가는 길에 있는 1000원짜리 안주가 나오는 맥주집이 우리의 최고 단골집이었다. (물론 1000원짜리답게 상당히 부실해서 오히려 돈이 더 많이 드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그는 술 마시는 데에는 그다지 끼지 않았던 것 같다. 조금 취한 듯한 모습을 한 번쯤? 본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꽤나 유식한 그는 상당히 무식한 나를 많이 가르쳐주려고 애썼던 것 같다.

 

과정을 마치고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 영화계에서 일하게 되었다. 대부분은 지금 아마 영화와는 전혀 상관 없는 일을 하고 있으리라 여겨진다. 나처럼.

 

그는 당대 최고의 평론가 정성일의 부름을 받아, 당대 최고의 영화잡지 키노에 글을 쓰기도 했다.

 

한동안 연락이 끊겼다가,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었다.

 

여자친구가 있다길래,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군하고 생각했다. 더블 데이트도 했고, 그는 그 여자친구와 나는 그때 그 남자친구와 결혼을 했다.

 

우연찮게 한 동네에 살게 되어 한 두 번 부부동반 밥도 먹고 맥주도 마셨다. 그들은 아들을 하나 낳았는데, 제 엄마를 닮아 이쁘게 생긴 그 아이는 감기에 자주 걸렸었다. 이제 잔병치레는 하지 않는 건강한 아이가 되었겠지.

 

그러다가 난 그 동네를 떠나게 되었고, 그들 부부는 싱가폴에서 살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고는 잊고 살았었다.

 

2013년이 시작되고 며칠 후,

 

놀라지 마. 류상욱이 많이 아프대.”

 


 

그를 생각하면 제일 많이 떠오르는 모습이 있다.

 

세종대 평생교육원에서 공부할 때, 조별로 단편 영화를 만드는 과제가 있었다. 누구와 어떻게 조를 만들 지도 순전히 우리 자유였다.

 

우왕좌왕 하고 있는데, 그가 나를 돌아보더니 말한다.

 

넌 나만 따라오면 돼.”

 

그 땐, ‘히히 웃기네. 지가 뭔데 ㅋㅋㅋ라는 생각도 좀 했다. (결국 그랑 같은 조를 했지만)

 

 

류상욱이 쓴 책 - 그가 싱가폴에서 사는 동안 본 영화들에 관한 책 - 사실 한 달쯤 전에 내 손에 들어왔는데차마 읽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꼭 읽어야겠다. 아마도 그는 자기 글이 더 많이 읽혀지길 바랄 테니까.

 

오빠, 책 잘 읽을게요. 편히 쉬세요.

 



by youngsong | 2013/03/03 04:06 | 책 book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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