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03월 01일
<정의란 무엇인가> on 장애인이 골프 경기에서 카트를 타고 플레이 하는 것
"케이시 마틴은 다리가 불편한 프로 골퍼였다. 혈액순환 장애로 골프 코스를 걸어가려면 심한 고통이 따르고 출혈과 골절이라는 심각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마틴은 이런 장애에도 불구하고 늘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 이후 프로로 전향했다.
마틴은 미국 프로골퍼협회에 토너먼트 경기 중에 골프 카트를 이용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PGA는 최고 프로 토너먼트에서는 카트 이용을 금지한다는 규정을 들어, 이 요구를 거절했다. 마틴은 걸국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미국장애인법을 지적했다. 이 법은 애초 활동의 "본성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범위에서, 장애인에게 합당한 편의 시설을 제공하도록 규정한다.
(......)
이 사건은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갔고, 근엄한 판사들은 비전문가 입장에서, 언뜻 어리석어 보이는 질문과 씨름해야 했다. "골프 코스에서 카트를 타고 다니면서 샷을 하는 사람도 '진짜' 골프선수인가?
이 사건은 전형적인 아리스토텔레스식 정의에 의문을 제기한 셈이다. 마틴에게 골프 카트를 이용할 자격이 있는 지 판결하려면, 법원은 문제가 되는 활동의 본질을 결정해야 한다. 코스를 걷는 것은 골프의 본질인가, 부차적 행위인가? PGA의 주장대로, 걷는 것도 골프의 본질에 해당한다면 마틴에게 카트를 타도록 허용하는 것은 경기의 "본성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조치다. 권리에 관한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법원은 골프의 텔로스, 즉 본질을 정해야 했다.'
(..........)
골프의 본질에 관해 누구의 의견이 맞든 간에, 케이시 마틴의 카트 사건에 대한 연방대법원 판결(7:2로 마틴 승소)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을 생생히 보여준다. 정의와 권리에 관한 논쟁은 사회 제도나 조직의 목적, 그것이 나누어주는 재화, 그리고 영광과 포상을 안겨주는 미덕에 관한 논쟁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법을 만들 때 이런 문제에 중립을 지키려 노력하지만, 좋은 삶의 본질을 논하지 않고는 공정성을 말하기가 불가능해보인다.
---------------------------------------------------------------
책의 이 부분을 읽으면서 런던 올림픽 때의 '피스토리우스 논쟁'이 떠올랐다. (조금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그는 지금 여자친구 살해 사건으로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오스카 피스토리우스는 생후 11개월 때 두 무릎 아래를 절단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의족을 착용하고, 피나는 노력으로 육상 선수가 된다.
문제는 그의 기록이 너무 좋았던 거다. 장애인 올림픽은 물론이고 2012년 런던올림픽에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 국가대표로 출전한다.
논란은 '그가 착용한 첨단 의족이 기록 향상에 도움이 되므로 그는 올림픽에서 경쟁할 자격이 없다.', "아니다. 이건 장애인 차별이다.'였다.
마틴은 미국 프로골퍼협회에 토너먼트 경기 중에 골프 카트를 이용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PGA는 최고 프로 토너먼트에서는 카트 이용을 금지한다는 규정을 들어, 이 요구를 거절했다. 마틴은 걸국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미국장애인법을 지적했다. 이 법은 애초 활동의 "본성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범위에서, 장애인에게 합당한 편의 시설을 제공하도록 규정한다.
(......)
이 사건은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갔고, 근엄한 판사들은 비전문가 입장에서, 언뜻 어리석어 보이는 질문과 씨름해야 했다. "골프 코스에서 카트를 타고 다니면서 샷을 하는 사람도 '진짜' 골프선수인가?
이 사건은 전형적인 아리스토텔레스식 정의에 의문을 제기한 셈이다. 마틴에게 골프 카트를 이용할 자격이 있는 지 판결하려면, 법원은 문제가 되는 활동의 본질을 결정해야 한다. 코스를 걷는 것은 골프의 본질인가, 부차적 행위인가? PGA의 주장대로, 걷는 것도 골프의 본질에 해당한다면 마틴에게 카트를 타도록 허용하는 것은 경기의 "본성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조치다. 권리에 관한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법원은 골프의 텔로스, 즉 본질을 정해야 했다.'
(..........)
골프의 본질에 관해 누구의 의견이 맞든 간에, 케이시 마틴의 카트 사건에 대한 연방대법원 판결(7:2로 마틴 승소)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을 생생히 보여준다. 정의와 권리에 관한 논쟁은 사회 제도나 조직의 목적, 그것이 나누어주는 재화, 그리고 영광과 포상을 안겨주는 미덕에 관한 논쟁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법을 만들 때 이런 문제에 중립을 지키려 노력하지만, 좋은 삶의 본질을 논하지 않고는 공정성을 말하기가 불가능해보인다.
---------------------------------------------------------------
책의 이 부분을 읽으면서 런던 올림픽 때의 '피스토리우스 논쟁'이 떠올랐다. (조금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그는 지금 여자친구 살해 사건으로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오스카 피스토리우스는 생후 11개월 때 두 무릎 아래를 절단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의족을 착용하고, 피나는 노력으로 육상 선수가 된다.
문제는 그의 기록이 너무 좋았던 거다. 장애인 올림픽은 물론이고 2012년 런던올림픽에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 국가대표로 출전한다.
논란은 '그가 착용한 첨단 의족이 기록 향상에 도움이 되므로 그는 올림픽에서 경쟁할 자격이 없다.', "아니다. 이건 장애인 차별이다.'였다.
이거 참 어려운 문제다.
-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개인적으로는 2012년 현재, 피스토리우스의 올림픽 출전은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으로 더욱 테크놀로지가 발전한다면? 음… 논쟁은 더욱 첨예해질 것 같다.
# by | 2013/03/01 15:03 | 책 book | 트랙백 | 덧글(0)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