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JUSTICE> - 마이클 샌델

이 책, 필수 교과 과정에 넣으면 좋겠다. ㅎ

물론 이 책 한 권이 세상의 수많은 도덕적 딜레마, 의문, 갈등들을 깨끗이 해소해주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런 거 기대하는 거 자체가 무리 아닌가;;)

내가 저자의 주장에 많이 동의해서 그런 지는 모르겠지만,

할 수만 있다면 이 책을 전 세계인의 필독서로 지정했으면 좋겠다. ㅎ
(지정만 하고 읽고 안 읽고는 개인의 자유로...ㅋ)

요즘 좀 정신 사나와서 이 책을 다시 집어들었는데,

참 묘하게도 위안이 되었다.

특히, 이 문장.

"인격을 갖춘다는 것은 (때로는 서로 상충하는) 여러 부담을 인식하며 산다는 뜻이다."

그래, 내가 혼란스러운 것은 사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야! ㅎ


사실 책의 첫 3분의 2는 나에게 명성만큼의 어마어마한 감흥을 주진 않았다.

그런데, 뒤로 갈 수록 조금씩 조금씩 답을 얻는 - 동시에 또 다른 질문을 품게 되는 - 느낌을 받으며, 이 책을 읽게 된 것에 감사하게 되었다.

요즘 시대성, 시의성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는데...

현재의 "잣대"로 과거의 사건, 인물들을 평가, 폄하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역사적 평가를 하지 말자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그 시대의 한계와 제약, 그리고 그 시점까지의 legacy와 현재까지 축적된 legacy는 다를 수밖에 없지 않는가.

이를 전제로, 이 책은 지금 이 시점, 이 시대에서,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어떤 기준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모범에 가까운 답을 제시하고 있지 않나 싶다.

시간이 좀 지나고, 또 나의 생각에 변화가 온다면, 그 때 다시 읽으면 과연 어떤 다른 느낌을 받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각설하고,

이 책의 에센스라고 생각되는 챕터 하나를 좀 베끼겠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우리는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을 탐색했다. 어떤 이는 정의란 공리와 행복극대화, 즉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어떤 이는 정의란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선택은 자유시장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행하는 선택일 수도 있고 (자유지상주의의 견해), 원초적으로 평등한 위치에서 '행할 법한' 가언적 선택일 수도 있다 (자유주의적 평등주의의 견해). 마지막으로 어떤 이는 정의란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쯤에서 독자들도 눈치챘겠지만, 나는 세번째 방식을 좋아한다. 왜 그런 지 설명해보겠다.

공리주의적 이해 방식은 두 가지 단점이 있다. 첫째는 정의와 권리를 원칙이 아닌 계산의 문제로 만든다는 점이고, 둘째는 인간 행위의 가치를 하나의 도량형으로 환산해 획일화하면서 그것들의 질적 차이를 무시한다는 점이다.

자유에 기초한 이론들은 첫 번째 문제를 해결하지만 두 번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자유 이론은 권리를 진지하게 다루고, 정의는 단순한 계산 이상이라고 주장한다. 자유에 기초한 이론들 사이에서도 '어떤' 권리가 공리주의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중시되어야 하는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근본 권리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데 의견 일치를 보이는 것도 있다. 그러나 이 이론들은 존중받을 권리를 가려내기 전에, 사람들의 기호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공적 삶에서 드러내는 취향과 욕구에 의문을 품으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이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의 도덕적 가치, 우리 삶의 의미와 중요성,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삶의 특성과 질은 하나같이 정의의 영역을 벗어난다.

이 부분이 내게는 오류로 보인다. 정의로는 사회는 단순히 공리를 극대화하거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만들 수 없다. 좋은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고, 으레 생기게 마련인 이견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문화를 가꾸어야 한다.

하나의 원칙이나 절차가 있어서, 그에 따라 소득,권력,기회를 정당하게 분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 원칙을 찾을 수만 있다면, 좋은 삶을 토론하는 과정에서 생기게 마련인 논란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논란을 피하기란 불가능하다. 정의에는 어쩔 수 없이 판단이 끼어든다. 구제금융이나 상이군인훈장, 대리 출산이나 동성혼, 소수집단우대정책이나 군 복무, 최고경영자의 임금이나 골프 카트 이용권을 두고 어떤 논란을 벌이든, 정의는 영광과 미덕, 자부심과 인정에 관한 대립하는 여러 개념과 밀접히 연관된다. 정의는 올바른 분배만의 문제는 아니다. 올바른 가치 측정의 문제이기도 하다."
 

하나 더... 가장 맘에 들었던 부분 중 하나인 로버트 케네디 부분만 좀 베껴적겠다 ㅎ

"......그(로버트 케네디)에게 정의는 단순히 국민총생산의 규모와 분배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더 높은 도덕적 목적과 관련이 있었다. 케네디는 1968년 3월18일 캔자스 대학 연설에서, 베트남 전쟁, 미국 여러 도시에서 일어난 폭동, 인종 불평등, 미시시피와 애팔래치아에서 목격한 심각한 빈곤을 이야기했다. 그는 명백히 정의와 관련된 이런 문제들을 언급한 뒤에 미국이 그릇된 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물질적 빈곤을 없애려고 아무리 노력한들, 더 어려운 일은 따로 있습니다. 우리 모두를 괴롭히는 (......) 만족의 결핍에 맞서는 일입니다." 미국인들은 "단순한 물질 축적"에 탐닉해 있었다.

(* 다음은 케네디 연설)

"우리 국민총생산은 한 해 8000억 달러가 넘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대기오염, 담배광고, 시체가 즐비한 고속도로를 치우는 구급차도 포함됩니다. 우리 문을 잠그는 특수 자물쇠, 그리고 그것을 부수는 사람들을 가둘 교도소도 포함됩니다. 미국삼나무 숲이 파괴되고, 무섭게 뻗은 울창한 자연의 경이로움이 사라지는 것도 포함됩니다. 네이팜탄도 포함되고, 핵탄두와 도시 폭동 제압용 무장 경찰 차량도 포함됩니다. (......)

우리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팔기 위한 폭력을 미화하는 텔레비젼 프로그램도 포함됩니다. 그러나 국민총생산은 우리 아이들의 건강, 교육의 질, 놀이의 즐거움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민총생산에는  우리 시의 아름다움, 결혼의 장점, 공개 토론에 나타나는 지성, 공무원의 청렴성이 포함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해학이나 용기도, 우리의 지혜나 배움도, 국가에 대한 우리의 헌신이나 열정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간단히 말해, 그것은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측정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미국인이라는 사실이 왜 자랑스러운가를 제외하고 미국에 관한 모든 것을 말해줄 수 있습니다."


* 저자의 다른 책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왜 도덕인가? Why Morality?>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
<민주주의의 불만>
<정의의 한계>

* 그런데, 이한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이 책도 초콤 궁금하네. (그런데 제목이 마음에 안 들어서 사주기 싫다 -_-)
샌델도 "으레 생기게 마련인 이견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문화를 가꾸어야" 하고, "좋은 삶을 토론하는 과정에서 생기게 마련인 논란"을 피하기란 불가능하다고 했으니 말이다.

(수정: 마음이 바뀌었다. <정의... 틀렸다> 리뷰 몇 개 읽어보니... 뭐 이 책은 패스해도 되겠다. 세상에 읽을 책 너무 많다. 이 책까지 읽을 여력 없겠다.)

요즘 많이 하는 생각 중 또 하나가 '어쩌면 우리는 "결론"을 먼저 내린 후,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근거와 논리를 찾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JUSTICE>를 읽는 중에도 혹시 샌델도 그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는 순간들이 있었다.

물론 의식적이든 잠재의식적이든 "결론"에 이르는 과정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글을 쓰고 심지어 그 글을 출판하는 경우는 분명히 목적의식이 있을 터, 결국 철학하고, 글을 쓰는 프로세스는 "결론 먼저, 논거 나중"이 될 확률이 높지 않을까?
(예전부터 모든 비평은 사실 다 기본적으로 인상 비평이라고 생각했었다.)
과연 그 누가 완벽하게 "객관적"이 될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하기나 한가?

그렇다면 문제는 누구의 논리가 더욱 합리적, 논리적인가일텐데...

내 성향으로 봐선 아마 <정의란 무엇인가> 쪽으로 마음이 기울 것으로 예상되지만.


어쨌든 비전문가 무지랭이인 나는...

책 여백에 이렇게 적었다.

Can't we just be "nicer" and "more understanding" people??

안될까? 안되겠지? ㅎ

by youngsong | 2013/03/01 02:44 | 책 book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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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헬로키티 at 2013/03/01 21:03
저도 즐겁게 읽었습니다. 저는 그 장막이라는 개념이 인상깊어서, 그 뒤로 종종 어떤게 정의로운걸까 생각할때 제 자신을 장막뒤에 세워보곤 합니다.
Commented by youngsong at 2013/03/03 02:24
One can only try but got to try.^^

반갑습니다^^ 저도 제 자신을 장막 뒤에 세워보는 연습을 해야 겠네요.

갑자기 예전에 친구들이랑 했던 이야기가 생각 나네요.

억압 받는 상황이 아닌 입장에서는 억압 당하는 상황을 fully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결코 이해하려는 노력을 포기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 입장을 이해해보려고 애쓰는 자와 아닌 자의 차이는 극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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