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TH: 죽음이란 무엇인가

지은이 : 셸리 케이건
옮긴이 : 박세연

요즘 나를 무척이나 괴롭히는 주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특히 나를 괴롭히는 것은, "그래 그렇게 해야겠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렇게 하는 것이 그다지 온당치 않은 듯 보이는" 이유들이 마구 떠오르는 것이다. 맥이 빠진다. 어쩔 줄을 모르겠다.

역설적이게도, 그리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 "죽음"이라는 책이 막연!하나마 길을 보여준 것 같다. (아직 확신은 없지만)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하곤 했다.

고등학교 때, 하루는 '그래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사고를 당해 죽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에 유서를 써서 책상 서랍에 넣어두기도 했었다. (아버지께서 발견하시고 당신 보는 앞에서 찢으라고 하셨다;)

교회를 지속적으로 열심히 다니지는 않았지만 절대자인 신이 존재한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진 적도 있었다. 무신론자를 넘어서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지금은 오락가락 하는 와중이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다고나 할까...

이 책은 죽음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다.
지은이는, '영원불멸한 영혼이 존재한다는 논리적 근거는 현실 어디에도 없으며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이라는 것은 진정한 종말이다 . 그러나 죽음은 생각만큼 두려워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끝이 있기에 삶은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다. 우리는 두려움과 환상에서 벗어나 죽음을 대면해야 한다. 그리고 또 다시 사는 것이다.' 라는 주장을 매우 논리적으로 펴고 있다.

책을 읽으며, 나는 저자의 주장 중 많은 부분에 동의하였지만 그렇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왜냐하면 '죽음'이라는 주제에 단정적 결론을 내리기에 우리가 가진 "정보"가  아직은 매우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도 '단정적'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고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철학, 경제학, 사회학 등등 거의 모든 분야는 과학적 발전과 발견에 영향받아 왔다. 심지어 신학까지도. 그것은 아마도 아직까지는 과학의 발전이 인간 인식의 지평을 확장시키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과학의 발전이 모든 의문에 완벽한 해답을 줄 수 있는 그날이 과연 올 지는 모르겠다. 다만 철학도 윤리학도 사회학도 경제학도 '시대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입장은, 이 책은 이 책이 씌여진 시대 안에서 상당히 논리적으로 타당해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영원불멸의 영혼과 조물주의 존재를 확신하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이 책이 다르게 읽힐 수도 있을 것이다. 나또한 아직 과학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기술을 가정하여 논리를 펼치는 부분에서는 조금 불편하기도 했으니까.

이를테면...

저자는 영혼과 육체가 별개이고 진정한 나를 정의하는 것은 영혼이라다라는 이원론적 관점의 논리의 헛점을 파고들고자 몇 가지 상황을 가정한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의 뇌를 좌반구, 우반구 따로 나누어 각각 다른 B, C의 몸에 이식하면 A가 2 명이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불멸의 영혼도 둘로 나뉘는 것인가? 

여기서 나는 아직 현실적으로 불가는한 상황을 가정하는 것이 좀... 불편했다;

A의 뇌 반쪽과 B, C의 몸뚱아리를 가진 이  두 사람은 A와 동일 인물인가?  어떻게 같은 "두" 사람이 동시에 다른 곳에 존재할 수 있는가? 저자는 묻는다.

내 생각은, 새로이 탄생?한 두 사람은 A의 뇌를 가졌기 때문에 일단 자신을 A로 인지할 것이다. 여태 A가 살아왔던 과거, 감정, 욕망, 생각 등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연속성은 딱 거기까지이다. 이제 이 두 존재는 다른 경험과 생각의 프로세스를 경험하게 될 터이다. 그러므로 이 두 존재는 "같은" 존재가 아니다.

그렇다면 영혼은 소멸되는 것인가?  이것으로 영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인가?

다시 한 번 더 말하자면, 나는 일단 이 논리 전개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현시점에서 뇌를 반으로 나누어 다른 두 사람의 몸에 이식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철학의 영역에선 가능한 논쟁이겠지만..;;)

이 두 사람이 A냐 아니냐도 철학의 영역을 벗어나 사회학의 영역으로 들어서면 전혀 다른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어학의 영역으로 들어서면 여기서 "같은'이란 단어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또 다른 문제가 될 것이다.

아마도 이런 심오한 철학 논쟁을 이해하기에 나는 너무 무식한 것 같다;;
(저자는 쉽게 쓸 거라고 했는데 ㅎ 나에게는 주석이 10권 분량이 필요한 것일지도...)


인상적이었던 인용 문구들

그러므로 가장 끔찍한 불행인 죽음은 사실 우리에게 아무 것도 아니다. 우리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한 죽음은 우리와 아무 상관없다. 하지만 죽음이 우리를 찾아왔을 때 우리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따라서 우리가 살아있든 이미 죽었든 간에 죽음은 우리와 무관하다. 살아있을 때는 죽음이 없고 죽었을 때는 우리가 없기 때문이다.
- 에피쿠로스

영원히 살지는 않을 거예요. 그럴 수 없기 때문이죠. 만약 영원히 살 수 있다면 그것을 택할 테죠. 하지만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비로소 우리는 죽을 수 있는 거예요.
- 어느 미스 USA 참가자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우리는 그것들로부터 감정적 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다.
- 스피노자

P399  제13장 죽음을 마주하고 산다는 것

죽음에 대한 태도 - 부정, 인정, 무시

우리는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깨달음이 삶의 방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리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 있다. 물론 반드시 그렇다는 보장은 없다. 이 시점에서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우리는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항상 생각하면서 살아야하는가?"

친애하는 여러분, 이 질문이 이제야 떠올랐다면 사실 너무 늦은 것이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이 책을 제대로 읽어왔다면, 이 질문은 계속해서 여러분의 뇌리에 맴돌았어야 한다(이 책을 읽는 여러분을 향한 내 바람이었기도 하다).

(나는 이 책을 제대로 읽고 있었나보다. 적어도 이 관점으로는 ㅎ)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몇 개의 단어들......

연속성 continuity
인격 personality
익명성 anonimity와 친밀성 intimacy
concepts, 정의 definition, 정체성 identification, 사회적 합의,인정,동의
semantics and pragmatics
(비트겐슈타인에 흥미가 가는데 나한테 너무 어려울 것 같아서 도무지 엄두가...;;;)

그리고,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 한 곡, new kids on the block의 'call it what you want'

Call it what you want, darling
i still call it love
call it what want, baby
girl, I call it love

call it what you want
call it anything that you wanna do
i still call it love


참, 플라톤의 <파이돈> 꼭 읽으라는데





by youngsong | 2013/02/23 14:34 | 책 book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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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코로로 at 2013/02/23 16:02
교보에서 대단한 책인양 선전해서 한번 서서 읽어봤는데, 동양 철학의 생사관을 한번 훑었다면 별 특별한 시점은 없다는게 최종 감상이었습니다.

수천년전에 이미 다 훑었던 내용 들이랄까.

그게 지금에 와서는 이상한 신비주의로 호도되어서 그렇지, 죽음을 삶의 연장선상으로 보는 것 자체는 익히 익숙한 내용이었음.

단, 그게 서양의 관점에서 분석되었다는것은 좀 새로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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